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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아니2025년 4월4일 경기도 여 주시 금사면 전북리에서 제 10회 전국토종벼농부대회 및 제1회 108주모 토종쌀 술빚기 대회가 열린 가운 데, 토종벼 볍씨들이 나눔 행사를 위해 전시돼 있다. 김양진 기자


“1913년 가을 수원 권업모범장(지금의 농촌진흥청에 해당)에 도착해보니, 논 위는 황색·적색·백색·금색의 잡다한 색채로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 조선에서 확인된 재래품종(토종벼)은 3331종이었고 그중 붉은쌀(적미) 품종이 1천 종이었다.”
백장군은 바닐라향, 보리벼는 커피향
1935년 일제가 발행한 ‘조선농회보’ 제9권에 조선총독부 관계자가 묘사한 ‘볍씨 품종 개량·보급’으로 토종벼가 자 대신저축은행지점 취를 감추기 전 우리의 논 모습이다. 조선총독부가 이름을 확인해 기록한 토종벼만도 1451개에 달한다. 지금은 당연한 것만 같은 ‘황금빛 들판과 흰쌀밥’은 긴 한반도 벼농사 역사에서 100년 정도밖에 안 된 낯선 풍경이다. 수천년간 고을마다 미세하게 다른 기후와 토양·지형·비옥도 등의 환경, 그리고 농부의 손길에 따라 달리 적응해온 다채로운 토종벼들이 물결 국민은행 채용 쳤다. 2025년 4월4일 경기 여주시 금사면 전북리 남한강 변 우보농장에서 열린 ‘전국토종벼 농부대회’에 모인, 토종벼 부활을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한겨레21이 만났다.
올해로 열 번째 열린 농부대회의 주제는 ‘토종벼, 다시 관계를 맺다’였다. 토종벼 볍씨가 복원되고 밥으로 이용되는 것을 넘어 술과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비소구 있는 점을 고려해 올해부터 ‘제1회 108주모 토종쌀 술빚기 대회’도 함께 열렸다. 각양각색 토종벼의 개성을 이용해 이를 술로 빚어보면 어떻게 될까.
“벼 생김새가 강인하면 술을 담갔을 때도 강인함을 느낄 수 있어요. ‘백장군’(길고 흰 까락에 키가 큰 품종)의 경우엔 12시간을 불렸는데도 낟알이 으스러지지 않았어요. 개량벼는 8시간이면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 금리 충분한데 거의 2배를 해야 하더라고요.” 이번 술빚기 대회에 참가한 장여름 주모가 말했다. “토종쌀로 한 번이라도 술을 담가보셨으면 알 거예요. 토종쌀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방 성분이라고 생각해요. 술을 빚을 때 쌀을 씻은 그릇이 묵직하고 끈끈하게 기름으로 코팅돼요. 향기도 엄청납니다. 2022년부터 40개 품종 정도 토종쌀로 술을 빚어봤는데, 다들 그 향 산업은행 예금금리 기나 개성이 정말 뚜렷해서 아무리 빚어도 질리지 않았어요. 백장군은 잘 익은 진한 바닐라 향이 났다면 보리벼는 갈색빛이 도는데, 구수한 커피 향 같은 게 납니다. 한양조(벼 줄기가 굵고 까락은 흰데 낟알은 붉은 품종)는 일단 예쁩니다. 도정할 때도 술 빚을 때도 요오드 향이 나고 쌀을 씻으면 물이 붉게 물들어요. 너무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2025년 4월4일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전북리에서 제10회 전국토종벼농부대회 및 제1회 108주모 토종쌀 술빚기 대회가 열렸다. 장삼도 품종으로 빚은 토종쌀 막 걸리가 시음을 기다리고 있다. 우보농장 제공


관행농업 취약점 ‘토종벼’는 극복 가능
지방 성분이 많거나 향기가 강하다는 건 벼가 수분(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을 위해 벌 등 곤충을 유인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성분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야성이 살아 있다는 의미도 된다. 까락(낟알 껍질에 붙은 수염)의 색과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도 토종벼의 특징이다. 까락이 있으면 볍씨가 동물의 털에 붙어 퍼지기 쉽고, 까락을 통해 공기 중의 수분을 포집해 건조한 환경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한다. 자연적으로 분화한 개체를 선발해 재배하는 토종벼와 달리, 인공교배를 통해 탄생한 개량벼(재배벼)는 까락이 퇴화했다. 반면 80%가량의 토종벼에는 까락이 있다.
“까락은 벼의 야성이 남아 있는 기관이에요. 그런데 기계로 추수하고 도정할 때 (걸리기 때문에) 불편하거든요. 벼의 특징은 까락의 색깔이나 길이로 확연하게 구분되는데, 재배벼는 까락이 없어지게 인위적으로 개량한 거죠. 그래서 재배벼는 거의 구분이 안 됩니다.” 경남 밀양에서 토종벼 불도·귀도·붉은차나락 농사를 짓는 다랑협동조합 김진한 농부가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토종벼에 대해 연구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규모화·기계화가 우리 농업정책의 기조이기 때문이다. 토종벼는 정부의 수매 대상에서 빠져 있고, 도정하려 해도 농협 등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이용할 수 없다. 토종벼에 대한 아무런 정책적 지원이 없는 이유는 뭘까. 농촌진흥청 담당자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더 좋은 벼 품종들이 개발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 등과 더불어 화학비료와 유기합성농약을 사용해 작물을 재배하는 관행농업의 취약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2021년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도열병으로 전북 벼 재배면적의 43.0%(4만8천㏊)가, 2024년엔 전남지역에서 발생한 벼멸구로 전남 재배면적의 13.3%(2만6천㏊)가 대규모 피해를 입었다. 도별 보급·수매 대상인 2~3개 품종이 재배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정이다. 재배품종 단순화와 이상기후가 결합해 이런 병충해 피해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짜임새 촘촘해 은은하게 이어지는 밥맛”
“품종 간 특성이 뚜렷한 토종벼를 장려하면 해결될 문제인 거 같아요. 환경오염에 농업경영비 부담까지 큰 농약 사용도 줄일 수 있고요.” 김진한 농부가 말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화학비료 사용량은 10.5㎏/㏊로 1980년(5.8㎏/㏊)보다 크게 늘었다. 더욱이 수입에 의존하는 비료와 농약값 부담은 지난 20년간(2002→2023년) 2배 이상(145만2천원→317만7천원) 올랐다. 김진한 농부가 이어서 말했다. “토종벼를 키울 땐 가장 필요한 게 벼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관행농업은 쌀은 인간이 먹고 볏짚은 소에게 주고 그 빈자리를 비료로 채우는 식이죠. 하지만 토종벼는 비료를 주면 쓰러집니다. 그래서 볏짚을 다시 논에 넣어주고, 그걸 미생물이 분해하고, 그 미생물을 먹으려고 곤충이 생기고, 곤충 때문에 새가 와서 똥을 싸고 그게 생물학적 퇴비가 돼서 생태계가 유지되거든요.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유지되는 숲과 같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외면하는 토종벼 수매·도정 등은 작은 정미소들이 맡아주고 있다. 광주 동구의 맑똥정미소 김영대 대표는 “요즘 정미소는 최소 1t은 가져가야 도정해준다. 다양한 작물을 심어서 품종별로 수확량이 적지만 농가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들은 도정할 곳조차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통계청 ‘2023년 농림어업 조사 결과’를 보면, 1㏊ 농사를 짓는 소농은 73만4천 가구로 전체 농가의 73.5%를 차지한다. “소농이 지은 농산물은 물량도 적고 불규칙적이라 자본시장에서 다루기가 어렵죠. (품질이) 표준화돼 있지도 않고요. 깔끔하다는 기준에도 안 맞죠. 새로운 시장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맑똥토종쌀롱을 열어 도시 사람들이 토종쌀밥의 다양함을 느끼게 하고, 소량의 토종쌀을 매달 받아보도록 정기구독자를 찾거나 펀딩을 해서 수매를 합니다. 그렇게 다수인 소농이 지역을 먹이게 하고, 씨앗의 다양성과 농부의 다양성이 소실되지 않을 수 있어요.”
토종벼는 최근 그 맛도 인정받고 있다. 2023년 경기 고양 벽제농협에서 우보농장이 재배한 토종벼 귀도와 재배벼 4개 품종(가와지쌀·밀크퀸·아끼바레·참드림) 등 5개 품종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귀도가 압도적인 차이로 1등을 차지했다. 같은 해 미슐랭 가이드 식당인 ‘에빗’(서울 강남구)도 귀도를, 신라호텔 3곳도 한정식 메뉴에서 토종벼 4종을 이용한 토종벼 솥밥을 내놓고 있다. 2024년부터 벽제농협은 귀도를 수매하고 있다. 농협 단위 첫 수매 사례다.
음식 작업 공간인 ‘공간 사부작’ 이영민 대표가 토종벼의 맛에 관해 설명했다. “개량벼로 지은 밥이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주인공이 죽어서 맥락이 끊기는 느낌이라면, 토종벼로 지은 밥은 한강 작가 소설처럼 짜임새가 촘촘하니 끝까지 먹고 나면 은은하게 맛이 쭉 올라오죠. 와인만 테루아르(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들)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토종벼의 다양성은 한국이 좁지만 다양한 지형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거죠.”



2020년 9월16일 경기도 양평군의 우보농장 채종포에서 자라는 각양각색의 토종벼들. 가운데 까맣고 키 큰 벼는 까만 멧돼지라는 뜻의 흑저도다.우보농장 제공


일제 치하 토종벼 퇴출 강요
토종벼의 품종별 특성에 대한 연구나 농사법 그리고 활용법은 민간 영역에서 도맡아 하고 있다.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와 토종벼 농부들이 농가들과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 등에 잠자고 있던 토종볍씨 450여 개의 품종을 찾아냈고, 2011년부터 심고 키워내고 보급해왔다.
문제는 일제강점기 토종벼 퇴출이 소비자나 농민의 선택이 아니라 일제 농업정책에 의해 강제됐다는 점이다. 1921년 9월5일치 동아일보 3면 ‘미곡검사 통일계획’ 기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일본 내지(內地·식민지에서 본국을 부르는 말)에서 조선쌀을 가장 배척하는 것은 붉은 쌀과 돌·모래가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 붉은 쌀과 돌·모래를 없애고 미곡검사를 통일하는 것은 조선쌀 이출(移出·일본으로 보냄)에 중요한 일이다.”
이화선 우리술문화원 원장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먹는 쌀은 대부분 일본 품종을 바탕으로 육종한 것들”이라며 “고려 시대 참파벼를 도입한 것처럼 외국 쌀 품종 도입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강제로 이식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우리 품종으로 알려진 삼광 같은 품종도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사니시키, 노하쿠, 구사부에 같은 일본 품종들이 등장한다. 이화선 원장이 이어서 말했다. “토종쌀은 수천 년 내려온 유전자의 결정체예요. 전국 어디를 가나 술맛이 비슷비슷하다는 얘기들을 하잖아요. 지금 우리가 마시는 술은 특성에 큰 차이가 없는 재배벼를 원재료로 누룩 등만 달리해서 만든 거예요. 특성 차이가 큰 토종벼를 원재료로 하면 술의 특성도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와인에 열광하는 것도 포도 품종이 1만 종이 넘기 때문이지, 그게 하나였다면 가능했을까요? 토종벼에 빠져든 젊은 분들, 예술가들이 붉은색, 흰색, 녹색, 검은색의 아름다운 논 풍경에 또 한 번 빠져들어요. 도정해서 밥을 먹어보니 품종마다 자기만의 고유한 맛이 있더라고요. 우리 입맛의 다양성을 찾는 데 오늘 자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2025년 4월4일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전북리에서 제10회 전국토종벼농부대회 및 제1회 108주모 토종쌀 술빚기 대회가 열렸다.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우보농장 제공


“우리 입맛의 다양성을 찾는 의미”
언젠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모두 담는 술의 향연을 벌이겠다는 뜻으로 열린 이날 ‘108주모 토종쌀 술빚기 대회’에는 16가지 토종쌀 막걸리가 등장했다. 자원한 각지 주모들이 받아간 쌀로 정성껏 빚은 결과물이다. 뚜벅뚜벅 소걸음으로 ‘108주모’로 향하는 내디딤이다. 작은 잔과 포크 하나가 주어졌다.
“정말 맛있는데요?” “제대로 술꾼이시네요.” 주거니 받거니 모처럼 따뜻하고 정다웠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